📑 목차
무지개가 겹쳐 보이는 이유, 파동이 그려낸 두 가지 서명
비가 개인 하늘에서 무지개가 또 하나의 곡선을 덧그리는가 하면, 주무지개 안쪽으로 연분홍·연녹의 가는 띠가 연속해 붙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전자를 쌍무지개(twinned rainbow), 후자를 하부 무지개·중첩무지개(supernumerary rainbows)라 부른다. 둘 다 “겹쳐 보인다”는 점은 같지만, 광학적 기원은 전혀 다르다. 쌍무지개는 서로 다른 크기의 빗방울 집단이 만든 두 개의 주무지개가 어깨를 맞댄 결과이고, 하부 무지개는 같은 빗방울에서 나온 빛이 파동으로 간섭해 드리운 미세한 프린지다. 즉 하나는 기하광학의 산물, 다른 하나는 파동광학의 서명이다. 이 글은 두 현상을 관측 기하, 빗방울 미세물리, 간섭 위상이라는 세 축에서 정리하고, 흔한 오해를 풀며, 대기 상태를 해석하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관측 기하의 출발점: 무지개 각, 암대, 색 배열
주무지개는 반태양점을 중심으로 약 42° 반경의 원호로 보이고, 2차 무지개는 약 51° 바깥에 형성된다. 두 무지개 사이의 어두운 띠는 알렉산더 암대다. 주무지개는 바깥쪽이 붉고 안쪽이 보라, 2차 무지개는 색순이 반대다. 이 기본 기하는 쌍무지개와 하부 무지개를 구분하는 좌표계가 된다. 쌍무지개가 나타날 때 보조 호는 주무지개와 거의 같은 색순을 유지한 채 갈라져 나오며, 둘 사이에 넓은 암대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하부 무지개는 주무지개 안쪽 가장자리로 바싹 붙은 여러 가는 띠로 나타나고, 색이 분홍·연녹처럼 파스텔에 가깝다. 위치·색·암대의 유무만 정확히 읽어도 본질을 1차 판별할 수 있다.
쌍무지개: 빗방울 크기 분포가 만든 ‘이중 주무지개’
같은 방향의 빛이 하나의 주무지개로만 모이는 이유는 빗방울 내부에서의 1회 내부반사 경로가 특정 편향각에서 강한 집중(디스펀전 극대)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구름 속 빗방울 크기 분포가 단봉이 아니라 이봉(두 집단이 뚜렷)일 때, 각 집단의 유효 무지개 각이 미세하게 다르다. 낙하 중 변형으로 납작해진 큰 물방울은 굴절률 경로가 약간 바뀌고, 산란 위상함수의 최대가 소폭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큰 방울용 주무지개”와 “작은 방울용 주무지개”가 각 몇 도 차이를 두고 동시에 강화되며, 관측자 눈에는 주무지개가 어깨를 나란히 한 두 개의 곡선으로 갈라져 보인다. 이게 쌍무지개다.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두 호의 색순은 동일하다(둘 다 주무지개이기 때문). 둘째, 갈라진 시작점이 공통이며 어딘가에서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빗줄기 내 크기 분포가 공간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 셋째, 2차 무지개와 달리 두 호 사이에 알렉산더 암대 수준의 넓은 어둠이 없고, 사이 간격이 비교적 좁다. 현장에서 주무지개 바깥쪽에 더 큰 반경의 흐릿한 곡선이 나타났다면 2차 무지개, 주무지개와 거의 붙어 같은 색순의 곡선이 한 가닥 더 생겼다면 쌍무지개일 가능성이 높다. 쌍무지개는 강한 소나기와 가는 비의 경계, 윈드 시어로 빗방울 크기가 공간적으로 분리될 때 특히 도드라진다.
하부 무지개: 파동 간섭이 그린 프린지, 왜 파스텔인가
데카르트의 기하광학만으로는 주무지개 안쪽에 생기는 가는 띠를 설명할 수 없다. 빛을 파동으로 받아들이는 에어리(Airy) 해석이 필요한데, 핵심은 같은 빗방울의 서로 다른 경로로 나온 빛이 관측자 방향에서 위상 차이를 가지고 겹친다는 점이다. 편향각 근처에서는 경로차가 매우 천천히 변하므로, 위상차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방향에서 보강 간섭, 그 사이에서 상쇄 간섭이 일어난다. 그 결과 주무지개 안쪽 경계에 밝고 어두운 프린지가 2~5가닥 정도 연속해 생긴다. 이것이 하부 무지개다. 미세물리의 결정적 요인은 방울 크기의 “균일도”다. 분산이 좁은 잔비·안개비 상황에서 프린지가 가장 선명하고, 크기 분포가 넓으면 위상 평균으로 프린지가 씻겨 사라진다. 색조가 파스텔로 보이는 이유는 프린지 폭이 색 분산 폭보다 좁아, 인접 파장대의 간섭무늬가 서로 섞이며 평균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명한 새빨강이나 진파랑이 아니라 연분홍·연녹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무지개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만 붙는 것도 파동 위상 조건이 편향각 내부에서만 충족되기 때문이다.
무엇과 헷갈리기 쉬운가: 2차 무지개, 반전 아치, 반사 무지개
쌍무지개를 2차 무지개로, 하부 무지개를 색 번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잦다. 구분법을 정리하면 이렇다. 2차 무지개는 주무지개보다 바깥에 위치하며 색순이 반대, 둘 사이의 암대가 넓고 어둡다. 쌍무지개는 주무지개와 색순이 같고 붙어 갈라진다. 하부 무지개는 주무지개 “안쪽 경계에 붙은 여러 가는 띠”로, 2차 호와 공간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는다. 물가에서 나타나는 반사 무지개(reflection rainbow)는 수면 반사광이 만든 또 하나의 무지개로, 호의 중심 높이가 달라 수면 가까이 비뚤게 겹치며, 대개 수평 대칭성을 드러낸다. 고층 얼음결정이 만드는 수평 아크·수평원호는 태양 고도와 얼음각에 의해 결정되며, 무지개와 달리 태양 중심 기준으로 위치가 정해진다. 위치, 색순, 암대, 대칭의 네 가지 잣대를 차례로 대보면 대개 혼동이 풀린다.
대기가 들려주는 맥락: 쌍무지개는 ‘크기 분포’, 하부 무지개는 ‘균일도’
무지개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구름과 강수의 미세역학을 비추는 간접 관측치다. 쌍무지개는 빗방울 크기 분포가 두 봉우리로 갈라졌음을 암시한다. 이는 강한 대류 셀과 주변 층운성 강수가 맞물리거나, 윈드 시어·증발 냉각 경계에서 낙하 속도가 다른 집단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었을 때 흔하다. 반면 하부 무지개는 크기 분포의 표준편차가 작은 잔비·후미진 비구름 가장자리에서 두드러진다. 같은 시간·장소라도 바람이 바뀌고 빗줄기 굵기가 섞이면 하부 무지개의 가닥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 프린지 수가 많아질수록 방울 평균 크기가 작고 균일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겹침”의 형태만 정확히 읽어도 구름 내부의 입자 특성·경계 구조를 유추할 수 있다.
정리하며
쌍무지개와 하부 무지개는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원인은 다르다. 하나는 서로 다른 방울 집단이 만든 두 개의 주무지개(기하광학)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방울에서 나온 빛의 위상 간섭(파동광학)이다. 낙하 변형에 따른 유효 편향각 이동, 에어리 적분에 의한 간섭 프린지의 설명이 핵심 뼈대다. 또한 소나기와 가는 비의 경계, 바람 시어가 강한 날의 쌍무지개, 잔비·연무성 강수에서의 선명한 하부 무지개가 국제 관측 사례로 축적돼 있다. 산란 위상함수·미 산란 계산과 에어리 이론이 현장 사진의 프린지 간격·가닥 수를 재현하며, 레이더·라이다와의 병행 관측이 빗방울 크기 분포 추정과 일치함을 보여 준다. 2차 무지개·반사 무지개·얼음결정 광학과의 구분을 위치·색순·암대·대칭으로 제시해 오인을 줄이고, 대기 미세역학 해석의 한계(공간 평균·시차 효과)를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하늘의 “겹침”은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쌍무지개는 빗방울 크기 분포의 이중성이라는 구름 속 통계를, 하부 무지개는 파동 간섭이라는 빛의 본성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 둘을 구분해 읽는 일은, 비가 갠 하늘을 더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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