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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르는 하얀 띠, 환백·환적의 첫인상
맑은 상공에 얇은 권운이 퍼져 있을 때, 태양을 가로지르는 하얀 띠가 하늘 둘레로 길게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환백(parhelic circle)이다. 지평과 거의 평행하게 놓인 이 띠는 태양의 고도에 상관없이 태양과 같은 고도의 대권을 따라 펼쳐지고, 때로는 하늘을 한 바퀴 돌아 반태양점 부근까지 이어진다. 반태양점에서 밝게 응집된 반점이 나타나면 이를 환적(anthelion)이라 부른다. 무지개와 달리 색이 거의 없고 희게 보이는 이유는 빛의 굴절·분산이 아니라 반사 지배의 경로가 많기 때문이다. 관측자는 넓은 하늘 지오메트리 위에서 얼음결정의 정렬, 빛의 경로, 태양 고도의 변주가 빚어낸 “대기광학 지도”를 한눈에 읽게 된다. 환백·환적은 드문 장관이지만, 원리를 알면 하늘의 미세한 표정과 대기의 층구조를 짚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형성 메커니즘: 정렬된 얼음결정과 반사의 지배
환백의 뼈대는 수평으로 정렬된 육각형 얼음결정이 만든다. 대표적인 두 형은 판상결정(plate)과 주상결정(column)이며, 공기역학적 토크와 항력 모멘트의 균형으로 넓은 면이 지표와 거의 평행하도록 떠 있는 경우가 많다. 태양광이 이러한 결정의 수직 측면에 거울반사로 부딪히면, 반사각=입사각의 법칙에 따라 같은 고도 평면으로 빛이 퍼진다. 이 반사광이 관측자 눈에 들어오는 모든 방위각이 모이면, 태양과 같은 고도를 따라 360도 환백이 그려진다. 굴절·분산이 지배적인 22도·46도 권환과 달리, 환백은 파장 의존성이 약해 거의 희게 보인다. 환적은 보다 복잡한 경로가 더해진 결과다. 수평정렬 주상결정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다중 반사·굴절(예를 들어 옆면–옆면 반사나 옆면–바닥면 복합 경로)로 광선이 뒤쪽으로 되돌아가 반태양점 부근에서 밝기가 응집된다. 동시에 환백 자체가 특정 방위각에서 광선 경로가 집중되는 “밝기 극대”를 만들기도 하는데, 태양에서 좌우 약 ±120도 위치의 밝은 반점(파런텔리아, paranthelia)이 그 예다. 이러한 경로들의 중첩이 조건에 따라 반태양점 주변을 더욱 강조해 환적을 뚜렷하게 만든다.
하늘의 기하와 동반 현상: 어떤 배치로 나타나는가
환백의 위치는 태양 고도와 무관하게 “태양과 같은 고도 원” 위에 고정된다. 반면 밝기의 분포는 태양 고도, 결정 형태, 정렬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 좌우 약 22도 지점에서는 대개 태양견(파헬리아)이 겹치며 환백에 밝기 봉우리를 더한다. 약 120도 부근의 파런텔리아 역시 환백을 따라 나타나는 대표적 최대점이다. 반태양점에서는 환적이 원반 또는 타원형 밝기군으로 응집될 수 있고, 주변으로 웨게너·트리커 아크, 로비츠 아크 등 얼음결정의 특수 경로가 연계되어 희미한 곡선들이 얽히기도 한다. 무지개·수평원호처럼 색 띠가 강한 현상과 달리, 환백은 전체적으로 무채색인 연속 띠라는 점이 가장 확실한 구별 기준이다. 또한 권운이 얇고 균일할수록 띠가 깨끗하며, 얼음결정 정렬이 흔들리는 날에는 띠가 군데군데 끊기거나 밝기 요철이 심해진다. 태양이 낮을 때는 대기 산란 배경이 붉게 물들어 환백의 구조 대비가 높아지고, 정오 무렵 밝은 하늘에서는 띠가 옅어 보이지만 22도 권환·태양견과의 상대 배치로 식별이 가능하다.
대기·입자 조건의 문법: 언제 더 선명해지는가
환백·환적을 돋보이게 하는 첫째 조건은 수평정렬 얼음결정의 존재다. 한랭하고 건조한 상층(대개 대류권 상부 또는 성층권 하한)에서 형성된 권운·권층운, 혹은 차가운 날의 다이아몬드 더스트 환경이 대표적이다. 상승·하강류가 약하고 전단이 크지 않은 층에서 결정들이 평평하게 정렬되기 쉬우며, 결정 크기 분포가 너무 작거나 너무 크면 산란 강도가 균일하지 않아 띠가 흐려진다. 둘째는 배경 광장(光場)이다. 태양 주변 산란광이 강하면 환백 대비가 낮아져 불리하고, 고도 낮은 태양과 좀 더 어두운 상층 배경(청람색 권운)이 있을 때 띠가 도드라진다. 셋째는 대기 투명도다. 에어로졸이 많으면 단파장 산란과 전방산란이 배경 휘도를 올려 띠의 동심 구조를 씻어 버린다. 반대로 건조하고 투명한 공기, 균질한 얇은 권운, 수평정렬이 잘 유지되는 고요한 상층 바람이 겹치면 환백이 긴 구간을 끊김 없이 에워싼다. 이러한 조건은 동시에 얼음결정 광학의 다른 표지—태양견, 수평원호, 22도 권환, 때로는 환일·환월—와 함께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므로, 전체 구성을 한 세트로 읽는 습관이 유용하다.
구분과 해석: 무엇과 헷갈리고 무엇을 말해 주는가
환백은 종종 수평원호(circumhorizon arc)나 고층운의 백색 띠와 혼동된다. 가장 간단한 구분은 “태양과 같은 고도” 여부다. 환백은 태양 고도와 동일한 원을 하늘 둘레로 그리며, 태양이 움직이면 띠의 높이도 함께 변한다. 수평원호는 태양이 높을 때만 태양의 아래쪽, 지평선 가까이에 색 띠로 나타난다. 무지개와의 혼동은 위치·색·형식 세 기준으로 풀린다. 무지개는 반태양점 중심의 원호이며 색이 선명하고, 환백은 태양 중심의 수평 원이며 거의 무채색이다. 과학적 해석 측면에서 환백·환적의 등장은 “수평정렬 얼음결정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는 상층의 전단이 약하고, 권운의 미세구조가 비교적 고르게 유지되는 층이 있다는 신호다. 또한 ±120도 밝기 극대나 환적이 또렷하다면, 주상결정 비율이 높거나 복합 경로의 기하적 정렬이 잘 맞았다는 간접 증거가 된다. 이러한 정보는 단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상층 바람의 난류 강도·권운 두께·결정 형태 비율 같은 대기 미세역학을 추정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정리하며
환백은 수평정렬 얼음결정의 측면 거울반사가 같은 고도 평면에 집적되어 만든 360도 백색 띠이며, 환적은 주상·판상결정의 다중 반사·굴절 경로가 반태양점 부근으로 수렴해 생기는 밝기 응집이다. 굴절·분산이 우세한 권환류와 달리 반사 지배 경로가 많아 무채색이고, ±22도 태양견, ±120도 파런텔리아 등 밝기 극대가 띠 위에 배열된다. 얇은 권운이 균일하고 상층 바람 전단이 약한 겨울철,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퍼지는 맑은 한파 아침, 대륙 내부 건조한 상층이 유지될 때 환백의 연속 구간이 길어지며, 반태양점 부근 환적이 함께 보고되는 사례가 축적되어 있다. 대기광학 표준 해석은 수평정렬 결정의 산란 위상함수·거울반사 경로와 주상결정 내부 다중 경로(예: 옆면–옆면, 옆면–바닥면 복합)로 환백·환적의 방위각별 밝기 분포를 재현한다. 또한 전천 카메라·태양고도 추적 자료로 띠의 고도 고정성, ±120도 밝기 봉우리, 반태양점 응집이 반복 검증되어 왔다. 무지개·수평원호·권환류와의 차이를 위치·색·기하로 분명히 가르고, 결정 정렬·형태·대기 투명도라는 물리 변수로 관측의 가변성을 설명한다. 요컨대 환백·환적은 단순한 “하얀 고리”가 아니다. 얼음결정의 정렬과 상층 바람의 얌전함, 그리고 빛의 반사 경로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순간, 하늘은 스스로의 구조를 수평의 큰 원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