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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도 무리와 46도 무리 · 얼음결정 형상별 무리 차이

📑 목차

    빙정이 만든 빛의 고리, 각도로 읽는 하늘 이야기

    겨울 하늘이나 상층에 얇은 권운이 깔린 날, 태양을 손이나 건물로 가리고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리면 희미한 원형 고리가 보일 때가 있다. 사진 필터를 씌운 것 같은 이 고리는 대기 중에 떠 있는 얼음결정이 태양빛을 굴절시키며 만든 광학 현상으로, 기상학에서는 무리, 영어로는 헤일로(halo)라고 부른다. 가장 흔한 것이 태양이나 달을 중심으로 반지름 약 22도 위치에 생기는 22도 무리이고, 그보다 훨씬 바깥쪽, 반지름 약 46도 부근에 나타나는 큰 고리가 46도 무리다. 둘 다 겉으로 보기에는 태양 둘레의 동그란 고리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얼음결정의 모양과 내부를 통과하는 빛의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각도와 밝기, 색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날 하늘에서도 어떤 때는 22도 무리만 보이고, 어떤 때는 두 고리가 함께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런 차이가 바로 상층 대기의 구조와 얼음결정의 형상을 반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22도 무리

     

    22도 무리의 원리와 육각기둥 얼음결정

    22도 무리는 대체로 고도 5~10킬로미터 부근의 권운·권층운 속에서, 육각기둥 모양의 얼음결정이 태양빛을 꺾어 줄 때 형성된다. 연필을 옆으로 잘라 본 듯한 단면을 가진 육각기둥 결정에 빛이 한 옆면으로 들어가 다른 옆면으로 나올 때, 얼음의 굴절률과 육각형의 내각 때문에 빛은 일정한 각도 이상으로만 굽어 나온다. 물과 공기 사이에서 보는 무지개처럼, 얼음결정 안에서도 빛이 가장 쉽게 나오는방향이 존재하는데, 계산해 보면 이때의 최소 편향각이 약 22도 주변에 집중된다. 관측자 입장에서는 그 각도로 꺾여 나온 빛이 모여 태양을 둘러싼 밝은 고리로 보이는 것이다.

     

    이 고리는 기둥 결정들의 방향이 제각각 뒤섞여 있을수록 더 둥글게 닫힌다. 상층 대기에서 바람과 난류가 얼음결정을 이리저리 돌려 놓으면, 어떤 방향으로 빛이 들어가도 결국 22도 부근으로 편향된 광선들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하늘 전체에서 보면 거의 완전한 원 형태의 22도 무리가 형성된다. 보통 안쪽 경계는 상대적으로 또렷하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차 희미해지며, 때에 따라 약한 무지갯빛 띠가 보이기도 한다. 고리 안쪽 영역은 주변 하늘보다 살짝 어둡게 느껴질 수 있는데, 22도보다 작은 편향각으로는 빛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빛이 덜 모이기 때문이다.

     

    46도 무리와 판형 결정, 더 멀리 도는 빛의 길

    46도 무리는 22도 무리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관측 빈도가 낮다. 반지름이 두 배 이상 넓어 태양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고리가 형성되며, 때로는 하늘의 절반을 감싸는 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무리는 주로 판형 얼음결정이나 기둥 결정의 끝면을 통과하는 빛, 혹은 결정 내부에서 두 번 이상 굴절되는 복합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육각형 판결정의 한 면으로 들어간 빛이 인접한 다른 면이나 모서리 쪽으로 빠져나올 때, 최소 편향각이 46도 근처에 형성되는데, 이 각도 영역에서 빛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여 넓은 외곽 고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로가 만들어지려면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먼저 대기 속에 판형이나 특정 비율의 기둥 결정이 충분히 많이 존재해야 하고, 그 크기도 어느 정도 균질해야 한다. 또 결정들이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보다는 약간 정렬된 상태일 때 46도 각에서의 빛 집중이 강화된다. 빛이 얼음 안에서 이동하는 경로가 22도 무리보다 길다 보니, 도달하는 광량이 줄어들어 고리는 훨씬 희미하게 보인다. 맨눈으로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22도 무리 바깥쪽 하늘을 천천히 훑어 보면, 아주 옅은 추가 고리가 겹쳐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촬영 후 사진의 대비를 조정해 보면 46도 무리가 의외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 기상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얼음결정 형상·정렬에 따른 무리의 차이와 동행하는 현상들

    22도 무리와 46도 무리의 가장 큰 차이는 반지름이지만, 그 배경에는 얼음결정의 형상과 정렬 방식이라는 미세한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대체로 길쭉한 기둥형 결정이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져 있을 때는 22도 무리가 우세하게 나타나고, 얇은 판형이 많거나 기둥의 끝면·모서리를 따라 빛이 이동하는 경로가 강할수록 46도 무리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두 고리가 함께 보인다면, 상층 대기 안에 서로 다른 형상의 결정이 섞여 있거나, 구름층이 높낮이가 다른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권운이 여러 층으로 겹친 날에는 22도 무리, 46도 무리, 환일, 수평 무리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같은 얼음결정이 다른 광학 현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태양 좌우 수평선 근처에 밝게 떠 있는 두 점은 환일이고, 태양을 중심으로 수평으로 길게 누운 띠는 수평 무리다. 수직으로 뻗은 빛기둥은 태양이나 강한 광원을 둘러싼 얼음결정이 세로 방향으로 정렬될 때 잘 형성된다. 이처럼 무리의 종류와 위치, 함께 나타나는 환일·빛기둥을 함께 살펴보면, 얼음결정이 중력과 바람 속에서 어느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지까지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늘에 그려진 빛의 지도를 읽는 일은, 곧 상층 대기의 미세한 구조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맺음말

    22도 무리와 46도 무리는 겉보기에 비슷한 원 두 개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얼음결정의 모양과 크기, 정렬 상태, 상층 대기의 온도와 습도, 난류 구조까지 복잡한 정보가 담겨 있다. 잠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고리의 크기와 밝기, 함께 나타난 다른 광학 현상들을 차분히 살펴보면, 오늘 이 시각 머리 위에서 어떤 구름이 어떤 방식으로 얼어붙어 있는지 조금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빛의 고리는 사실 태양에서 나온 광선이 수백 킬로미터의 대기층을 통과하며, 그 안의 얼음결정 하나하나에 부딪혀 꺾이고 흩어지며 만들어 낸 결과다. 같은 무리라도 날마다 모양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공기의 사연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2도 무리와 46도 무리는, 하늘이 잠시 보여 주는 대기의 단면도이자, 우리가 사는 공간이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 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