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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광선·반박명광선 (Crepuscular & Anticrepuscular Rays)

📑 목차

    박명광선과 반박명광선, 빛이 그리는 거대한 원근법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을 보면,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거대한 빛의 빗살이 구름 사이를 갈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흔히 신의 손가락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빛무늬가 기상학에서 말하는 박명광선(crepuscular rays)이다. 반대로 태양을 등지고 동쪽 하늘을 보면, 태양과 반대 방향에서도 비슷한 줄무늬가 수렴해 오는 아주 특이한 장면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이 반박명광선(anticrepuscular rays)이다. 두 현상 모두 태양이 낮게 떠 있는 박명 시간대(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에 잘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단순히 예쁜 풍경 사진이 아니라, 대기 중 에어로졸과 구름, 빛의 산란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는 광학 현상이라는 점에서 과학적인 의미도 크다.

     

    박명광선

     

    빛줄기의 정체, 산란과 그림자가 만든 대비

    박명광선을 이해하려면 먼저 빛줄기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빛 자체가 아니라 밝은 부분과 어두운 그림자의 대비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태양빛은 대기 중에 균일하게 퍼지지만, 그 사이를 지나가는 적운이나 높은 층운, 또는 지상의 산·건물 같은 장애물이 빛을 가리면 그 뒤로 길게 그림자 기둥이 생긴다. 이 그림자 주변에서는 상대적으로 빛이 많이 통과한 구간이 밝게, 그림자가 진 구간이 어둡게 보이면서 줄무늬 패턴이 형성된다. 대기 중의 먼지와 에어로졸, 수증기 입자가 빛을 산란시키는 역할을 해,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광선의 경로가 강조되는 것이다.

     

    태양이 높이 떠 있을 때는 광선과 그림자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뻗어 관측자의 시야 안에서 잘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 내려오면, 빛은 대기를 비스듬히 통과하면서 훨씬 긴 경로를 지나가게 된다. 이때 약간의 농도 차이만 있어도 산란광의 대비가 커져 줄무늬 패턴이 또렷해진다. 맑은 날보다, 옅은 박무나 연무가 있는 날, 또는 높은 권운·권층운이 얇게 깔린 날에 박명광선이 더 잘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자가 많을수록 산란이 강해져 빛줄기의 윤곽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태양 쪽으로 뻗는 박명광선의 특징

    박명광선은 대체로 태양 근처에서 시작해 같은 방향으로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거의 평행한 광선과 그림자 기둥이지만, 관측자의 눈에서 볼 때 원근감 때문에 태양 쪽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철길이 멀어질수록 한 점에서 만나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빛줄기가 하늘 전체를 가로질러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태양 주변의 적운이나 두터운 구름 가장자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구름 사이의 틈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이 새어 나오는 통로 역할을 하고, 그 뒤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줄무늬 사이의 어두운 간격을 만든다.

     

    색감 역시 시각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해 질 무렵에는 태양빛이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하며 짧은 파장의 푸른빛이 많이 산란되고, 상대적으로 긴 파장인 주황·붉은빛이 남는다. 그 결과 박명광선의 밝은 부분은 따뜻한 색을 띠고, 그림자가 진 부분은 푸른 회색이나 남색으로 보이면서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때 광선의 두께와 간격은 구름의 구조, 장애물의 형태, 대기 중 입자의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넓고 부드러운 빛줄기가 나타날 때도 있고, 가늘고 촘촘한 빗살무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패턴을 자세히 관찰하면, 단순히 빛이 예쁘다를 넘어 그날 대기의 층상 구조와 구름의 배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태양 반대편에서 만나는 반박명광선

    반박명광선은 원리 자체는 박명광선과 같지만, 관측 위치와 방향이 다르다. 태양을 등지고 서서 동쪽 하늘, 또는 태양과 정반대 방향의 하늘을 바라볼 때, 수평선 부근에서 몇 줄기의 빛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직관적으로는 빛은 태양 쪽에서만 올 텐데, 왜 등 뒤 하늘에서도 줄무늬가 보이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실제로는 태양에서 멀어지는 긴 광선과 그림자 기둥이 지구 곡률을 따라가며 관측자 뒤쪽 하늘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점과, 관측자가 하늘의 내부에 서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태양에서 날아온 빛은 거의 평행에 가까운 방향으로 들어오고, 구름이나 산이 만든 그림자는 이 평행광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이 광선 다발은 원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관측자를 지나 지구 반대편 방향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일직선이다. 하늘의 반대편에서는 이 선들이 원근법에 의해 또 한 번 한 점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결과 태양 반대쪽의 수평선 근처에서도 박명광선과 거의 대칭적인 줄무늬가 나타난다. 밤낮의 경계선, 황혼의 벨트근방이 약간 붉게 물들어 있을 때 반박명광선이 함께 보이면, 하늘 전체가 거대한 원형 구조로 연결된 듯한 인상을 준다.

     

    반박명광선은 박명광선보다 더 희미하고 관측 기회도 적다. 태양 방향과 반대 방향을 모두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쉽고, 대기 중 산란광의 대비가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줄무늬 패턴이 드러난다. 다만 한 번 눈이 익으면, 황혼이나 새벽에 고개만 돌려도 의외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구름 사이로 실핏줄처럼 길게 뻗은 박명광선이 서쪽에서 동쪽 하늘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반박명광선 역시 동시에 형성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맺음말

    박명광선과 반박명광선은 일상적인 하늘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대기의 기하학이다. 태양, 구름, 먼지 입자, 지구의 곡률이 한꺼번에 작용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구조가, 인간의 눈에는 원근법이 극대화된 빛살무늬로 보이는 것이다. 해 질 무렵 잠시 시간을 내어 서쪽과 동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면, 하늘 전체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빛과 어둠의 대비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단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서 있는 장소가 하나의 거대한 공간 속에 놓여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해 준다.

     

    박명광선과 반박명광선을 이해하는 일은 곧, 빛이 직선으로만 나아간다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대기와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빛이 어떻게 굽어지고 가려지고 드러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하늘 어디를 바라보든, 우리의 시선은 늘 거대한 도형의 일부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황혼의 빛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짧은 박명 시간대가 조금 더 입체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