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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광, 태양계의 먼지가 그려낸 희미한 빛의 기울기
깊은 밤, 인공 불빛이 거의 없는 곳에서 새벽녘 동쪽 하늘을 보면, 별들과는 다른 옅은 빛기둥이 지평선에서 비스듬히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겨울에서 봄 사이, 황도 부근을 따라 기울어진 이 빛줄기를 황도광(Zodiacal light)이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태양이 지나가는 길, 즉 황도 주변에서만 관측되며, 별빛이나 은하수와는 다른 질감의 빛이다. 또 태양과 정확히 반대 방향, 밤하늘의 한 점이 주변보다 살짝 더 밝게 보이는 현상이 있는데, 이것을 대영광(Gegenschein)이라 한다. 두 현상은 모두 상층 대기나 은하에서 오는 빛이 아니라 태양계 안에 흩어진 미세한 먼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리 태양계의 구조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로 사용된다.

도시에서는 이런 빛을 보기 어렵지만, 천문학과 대기광학을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황도광과 대영광은 오래된 연구 대상이다. 이들은 단순한 미적 풍경이 아니라 태양계 공간에 분포한 먼지의 양과 크기, 분포 형태를 역산하는 데 사용된다. 태양과 행성들 사이를 떠다니는 먼지는 혜성에서 분출되거나, 소행성대 충돌에서 나온 파편이 시간이 흐르며 작게 부서져 만들어진다. 이 먼지들이 얼마나, 어디에, 어떤 크기로 쌓여 있는지를 아는 일은, 태양계 형성과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필수적이다.
황도광, 태양계 먼지가 비추는 새벽과 초저녁의 빛
황도광은 태양빛이 태양계 내 미세먼지에서 산란되어 하늘에 만들어내는 거대한 빛의 원뿔이다. 태양 주변에 넓게 분포한 먼지 입자는 대체로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작은 알갱이로, 눈부신 별빛처럼 점을 이루지 않고 하늘 전체에 넓게 빛을 번져 놓는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에 있을 때, 관측자는 황도면을 옆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되고, 먼지 층을 통과해 오는 산란광이 지평선 위로 기울어진 빛기둥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황도광은 태양이 막 지고 난 뒤 서쪽 하늘, 혹은 해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서만 또렷이 관측된다.
빛의 색은 보통 약간 누런 흰빛이다. 태양광이 먼지에서 전방 산란될 때, 긴 파장의 성분이 조금 더 잘 살아남기 때문이다. 밝기는 은하수보다 약간 어두운 정도이지만, 광공해가 거의 없는 산악지대나 사막에서는 육안으로도 충분히 구별된다. 북반구에서는 봄철 새벽, 가을철 초저녁에 관측 조건이 특히 좋다. 이때 황도와 지평선이 이루는 각도가 커져, 빛기둥이 수직에 가깝게 치솟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황도가 지평선과 비스듬히 겹쳐, 황도광이 대기에 묻혀 버리기 쉽다.
황도광의 밝기와 모양을 정밀하게 측정하면, 황도면을 따라 분포한 먼지의 밀도 분포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태양에 가까운 영역과 화성 궤도 근처, 소행성대 주변의 밝기 차이는 그곳에서 먼지가 얼마나 공급되고 있는지를 시사한다. 우주 탐사선의 먼지 검출기 자료와 황도광 관측을 비교하면, 미세먼지의 기원과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 추론할 수 있다. 연구 결과, 혜성 꼬리에서 방출된 입자와 소행성 충돌에서 나온 파편이 서로 다른 크기 분포를 보이며, 태양 바람과 행성 중력에 의해 서서히 위치를 바꾸어 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대영광, 태양 반대편에서 되돌아오는 빛의 반점
대영광은 황도광과 같은 먼지에서 비롯되지만, 관측 방향과 산란 방식이 다르다. 대략 자정 무렵, 태양과 정확히 반대 방향에 해당하는 밤하늘의 한 점이 주변보다 옅게 밝아 보이는 현상이 대영광이다. 광량은 매우 미약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장시간 노출 사진이나 민감한 광전자 증배관으로 측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 희미한 반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빛이 미세한 입자에 의해 산란될 때, 산란 각도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일부 크기 범위의 입자들은 후방 산란, 즉 입자 뒤쪽으로 거의 바로 되돌아가는 방향의 산란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보인다. 대영광은 바로 이러한 후방 산란의 극대값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태양과 정반대 방향은 관측자에게 후방 산란광이 집중되는 위치이므로, 그 지점을 중심으로 약간 둥근 밝기 증강이 나타난다.
대영광의 형태와 밝기 분포는 먼지 입자의 크기와 재질, 표면 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이를 정밀하게 모델링하면, 황도광만으로는 분리하기 어려운 먼지 특성을 더 세분화해서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연구에서는 황도광과 대영광의 관측 데이터를 함께 사용해, 먼지 입자가 주로 실리케이트, 탄소질, 혹은 얼음 성분을 어느 정도 비율로 섞고 있는지, 크기 분포가 어떤지에 대한 제약을 건다. 이러한 정보는 태양계 초기 원시 원반의 구성과,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충돌과 증발·응축이 일어났는지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측 조건과 현대 연구에서의 의미
황도광과 대영광은 매우 약한 현상이기 때문에, 관측 조건이 까다롭다. 우선 달빛이 없어야 하고, 도시 조명이나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인공광도 최대한 피해야 한다. 특히 황도광은 낮은 고도에서 나타나므로, 가까운 마을 불빛만 있어도 쉽게 묻혀 버린다. 또한 대기 중 에어로졸이나 박무가 많으면 산란광이 늘어나 배경 밝기가 높아지며, 두 현상을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대형 관측소는 주로 해발 고도가 높고 건조한 사막이나 고원에 자리 잡는다. 이런 장소에서는 황도광이 흔한 밤하늘 배경으로 나타날 정도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황도광은 관측의 방해 요인이기도 하다. 어두운 천체를 촬영할 때, 하늘 배경이 완전히 검지 않고 황도광이 덧씌워져 있기 때문에, 이를 정밀하게 보정해야 한다. 반면 태양계 과학에서는 이 배경광 자체가 중요한 연구 자료다. 우주 관측 위성은 지구 대기 밖에서 황도광과 대영광을 측정해, 지상 관측에서 빠지기 쉬운 파장대와 위치 정보를 보완한다. 최근에는 적외선 관측 위성의 데이터와 합쳐, 태양계 먼지가 방출하는 열복사 성분까지 함께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황도광과 대영광 연구는 태양계 이해를 넘어 외계 행성계 연구에도 잇닿아 있다. 다른 항성을 도는 행성계 주변에서도 비슷한 먼지 원반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몇몇 별 주변에서는 황도광에 해당하는 빛이 간접적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리 태양계의 먼지 분포를 세밀하게 파악하면, 이런 외계 먼지 원반의 관측값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결국 야간 하늘의 아주 약한 빛 한 줄기가, 태양계 밖의 행성계까지 연결되는 연구 주제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황도광과 대영광은 대개 “보이지 않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광공해가 거의 없는 곳에서 눈이 충분히 어둠에 적응하면, 황도면을 따라 비스듬히 솟은 연한 빛기둥과, 태양 반대편에 떠 있는 작은 밝기 반점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별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행성들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먼지의 존재까지 함께 인식하게 된다. 황도광과 대영광은, 빈 공간처럼 느껴지는 태양계가 사실은 수많은 미세 입자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내는 현상이다. 그 희미한 빛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속한 행성계가 어떤 물질로,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더 깊이 묻는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