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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예측은 가능한가 – 과학이 도달한 한계

📑 목차

    언제, 어디서, 얼마나에 답할 수 있는가

    지진을 둘러싼 가장 빈번한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특정 날짜와 장소, 규모를 사전에 단정적으로 알 수 있는가. 대중이 기대하는 예측은 일기예보처럼 시·공간 범위를 좁히고 신뢰도를 수치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현재 과학이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재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과 장기 확률, 그리고 수 초에서 수십 초 앞서 알려주는 조기경보뿐이다. 반면 다음 주 화요일, 어느 단층에서 규모 7” 같은 단기·정밀 예보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이 글은 지진 발생의 물리 원리와 관측 한계, 연구자들이 시도해 온 다양한 접근, 사회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실질적 대안을 정리한다.

     

    지진 예측

     

     

    단층의 준비와 파열: 관측이 닿지 않는 지하의 과정

    지진은 지각판의 상대 운동으로 단층면에 응력이 축적되고, 마찰로 고정되어 있던 면이 임계에 도달해 미끄러지는 순간 발생한다. 이 과정은 수 km에서 수십 km 깊이에서 진행된다. 지표에 드러난 단층 흔적과 달리, 실제 파열의 핵은 고압·고온 환경의 암석 내부다. 현재의 관측망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지진계. 미세진동에서 본진까지 기록해 단층 파열의 위치·깊이·규모를 역산한다. 둘째, GPS·GNSS와 인공위성 레이더 간섭(InSAR). 지표가 cm 단위로 어떻게 변위되는지 측정해 장기 변형과 사건 전후의 차이를 본다. 셋째, 시추공 관측. 제한된 지역에서만 가능하지만 응력·수압·미세진동을 직접 측정한다.

     

    핵심 문제는 신호의 모호성과 공간 해상도다. 단층은 균질한 면이 아니다. 점착이 강한 구간, 약한 구간, 수분이 많은 파열대가 불균질하게 섞여 있고, 응력 축적과 방출의 속도도 일정하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파열 전 미소지진의 군집 변화, 지하수 화학 성분의 변동, 전자기·전리층 이상, 동물 행동 등 다양한 전조가 논의되어 왔지만, 반복성과 재현성이 부족했다. 일부 사건에서는 의미 있는 패턴이 발견되지만, 다른 사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관측이 성공하려면 시계열이 길고, 잡음이 적고, 같은 단층 구간에서 다수의 반복 사건이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다.

     

    사례와 역사: 단기 예측의 도전과 교훈

    20세기 후반 이후 여러 국가가 단기 예측을 시도했다. 특정 전조 신호(지하수 수위·가스, 전자기 이상, 미소지진 패턴)를 임계치로 삼아 경보를 내는 방식이다. 성공과 실패가 섞였고, 무엇보다 거짓 경보누락 경보의 사회적 비용이 컸다. 거짓 경보는 대피·휴업·교통 통제 등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고, 반복되면 경보 피로를 낳는다. 누락 경보는 예측 체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결국 많은 기관은 단기 예측을 공식 서비스로 내놓기보다, 관측·연구 데이터로 축적하고 사후 검증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신 장기·중기 수준의 위험도 평가가 자리잡았다. 특정 단층대의 재발 주기와 주변 응력장의 변화를 반영해 향후 수십 년 내 규모 M 이상이 발생할 확률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 정보는 도시계획과 내진 설계 기준, 보험·재정 대책 같은 구조적 의사결정에 더 적합하다. 여기에 사건 발생 직후 수 초에서 수십 초를 벌어 주는 조기경보가 결합되며, 실질적 피해 저감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조기경보는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파열의 빠른 감지와 전달이다. 근처 지진계를 통해 처음 도달한 P(작은 흔들림)를 감지하고, 뒤이어 도착할 S·표면파의 강한 흔들림을 추정해 알린다. 전철 감속, 가스 차단, 공장 설비 보호, 병원 장비 안정화 같은 자동화 규칙이 붙으면 몇 초의 차이가 사고를 줄인다.

     

    데이터 혁신과 인공지능: 가능성과 한계의 균형

    최근 연구는 두 방향에서 진전이 있다. 첫째, 고밀도 관측. 저가 센서와 스마트폰, 해저 케이블 광섬유를 활용해 촘촘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위성 InSAR의 재방문 주기를 단축해 장주기 변형 지도를 빠르게 갱신한다. 해저 단층대에 직접 센서를 설치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둘째, 데이터 해석의 자동화. 인공지능은 미세진동에서 특징을 추출해 사건 감지·분류·위치 추정을 가속하고, 파열 초동 수 초의 파형만으로 향후 진동 강도를 예측하는 모델도 개발 중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관측의 빈틈을 채워줄 수는 있어도 지질학적 제약을 넘어설 수는 없다. 학습은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며, 드물게 일어나는 대형 사건은 학습 표본이 부족하다. 지역별 지질·단층 구조의 차이도 모델의 일반화를 어렵게 만든다. 전조 신호 탐지의 경우, 진짜 변화와 일상적 변동을 구분하는 기준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잡으면 거짓 경보가 늘고, 둔감하게 잡으면 중요한 신호를 놓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예측 엔진이 아니라 관측·조기경보·피해평가의 보조 수단으로 두는 편이 정책적으로 안전하다.

     

    한편, 사회적 기대 관리도 중요하다. 단기 예측의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장기 위험도와 조기경보·내진 설계를 결합한 다층 방어 전략이 현실적 최선임을 공유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고, 경보의 원리와 한계, 오경보·누락 시의 대처 절차까지 평시 교육에 포함하면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강해진다.

     

    예측보다 대비, 신호보다 절차

    과학이 오늘 당장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은 세 가지다. 첫째, 장기 위험도 평가와 내진 설계의 정교화다. 단층·지반 특성을 반영한 지역별 기준과 리트로핏 지원은 피해를 구조적으로 줄인다. 둘째, 조기경보의 신뢰성과 자동화다. 철도·가스·의료·산업 설비에 표준화된 반응 절차를 붙여 몇 초를 의미 있게 만든다. 셋째, 시민·기관의 준비다. 가정과 학교·직장의 비구조요소 고정, 대피 동선 확보, 훈련과 정보 채널의 일관성은 예측이 없어도 생명을 지킨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강한 지진이 올지 모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오늘 준비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다. 예측의 한계를 인정할 때, 대비의 우선순위는 더 명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