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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번개가 친다는 뜻
눈보라 속 천둥, 흔히 ‘썬더스노(Thundersnow)’라 부르는 현상은 겨울에 형성된 구름에서 전하가 분리되어 번개·천둥이 동반되는 사건을 말한다. 비구름의 여름 뇌우와 달리, 지표는 강한 한기와 깊은 안정층으로 덮여 있고 강수 형태는 눈 또는 진눈깨비다. 그럼에도 상층의 차가운 공기 유입, 지형에 의한 상승, 온난하고 습한 공기의 재래가 겹치면 구름 내부에서 얼음입자와 우박 씨앗(그라우펠)이 충돌하며 전하가 분리되고, 짧지만 강한 대류가 발생한다. 눈이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에 천둥은 낮고 둔탁하게 들리거나 먼 거리에서 거의 들리지 않을 수 있다. 또 번개가 구름 속에서 끝나버리는 무구름 방전 비율이 높아, 시각적으로는 섬광 없이 하늘 전체가 하얗게 번쩍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드문 만큼 임팩트가 크지만, 실제로는 겨울 중위도와 해안·호수 주변에서 매년 반복되는 ‘희귀하되 체계적인’ 겨울형 뇌우다.

전하가 만들어지는 겨울 구름의 공정
전하 분리의 주역은 비유도성 충전이다. -10℃에서 -20℃ 사이의 혼합상(물·얼음 공존) 영역에서 그라우펠과 얼음결정이 충돌하면, 표면 미세 필름 상태의 액수와 온도차, 충돌 속도에 따라 그라우펠이 음전하를, 작은 얼음결정이 양전하를 띠는 쪽으로 평균이 기울어진다. 가벼운 얼음결정은 상층으로, 무거운 그라우펠은 하층으로 분리되어 수직 전기장이 형성되고, 임계 전계에 도달하면 리더가 발달해 방전이 일어난다. 여름 적운에 비해 수분 총량은 작지만, 겨울에는 상층이 유난히 차가워 습윤 대류의 정역학적 부력(EL/ΔT)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또한 냉각된 지표 위에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재래(overrunning)하면 ‘지표는 안정하지만 그 위층은 불안정’한 정체가 만들어져, 눈구름 내부에서만 깊은 대류가 생기는 고상 대류(elevated convection)가 형성된다. 이때 구름의 중심부에는 액적·그라우펠·얼음결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얇은 충전층이 만들어지고, 좁은 밴드 형태의 강설과 번개가 함께 나타난다.
성립 조건 1: 종관 규모의 시나리오
가장 흔한 무대는 빠르게 심화하는 온대저기압이다. 저기압의 온난전선·폐색전선 상부로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미끄러져 올라가고, 뒤에서는 한랭이류가 밀고 들어오며, 중심부에는 건조한 공기가 ‘드라이 슬롯’로 파고든다. 이 세 가지 흐름이 TROWAL(폐색부 온난공기 혀)과 한랭심 상공의 강한 층상불안정을 만들면, 전선대의 폭이 좁은 구간에서 CSI(조건부 대칭 불안정)와 FGEN(등온선 수렴에 의한 전선성 수렴)이 겹쳐 강한 승강이 유지된다. 결과는 친숙한 장면이다. 레이더에는 잘 정렬된 중규모 밴드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순간적인 반사도 급증·ZDR 컬럼·그라우펠 서명이 동반되며 낙뢰 탐지망에 짧은 펄스가 찍힌다. 눈 강도는 시간당 수 cm에서 5~10cm까지 치솟고, 돌풍과 함께 시정이 급격히 붕괴한다. 이런 타입의 썬더스노는 대도시권에서도 관측되며, 도시 열섬과 고층건물의 난류가 상층 대류의 씨앗을 보강하는 경우가 있다. 이어지는 특징은 번개의 극성이다. 겨울 뇌우는 양전하 지상방전(Positive CG) 비율이 여름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한 번의 방전 에너지가 큰 사례가 보고된다.
성립 조건 2: 해안·호수·산악에서의 국지 메커니즘
두 번째 무대는 따뜻한 수역 위의 한랭이류다. 강한 시베리아 고기압 또는 대륙 고기압의 찬 공기가 해수면 위를 지나면, 수면과 하층 대기의 온도차가 커져 해기차 대류가 폭발적으로 강화된다. 바람이 길게 정렬되는 ‘페치(fetch)’와 해안선이 만드는 수렴대가 겹치면 좁고 길게 뻗은 호수효과·해기차 눈구름 밴드가 형성되고, 수증기 공급이 충분할 경우 밴드 내부에 그라우펠 생성이 활발해져 번개가 튄다. 해안 단층지형·해발 상승은 이 과정을 더 돕는다. 세 번째 무대는 산악의 정체 상승이다. 깊은 냉각과 강한 상층한기, 산 사면을 타는 난류가 합쳐지면, 산악파와 결합한 얕은 대류 셀 안에서 충전층이 만들어진다. 이들 국지형 썬더스노는 종관 저기압이 약해도 발생할 수 있고, 지형에 고정된 채 몇 시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눈보라와 지형 채널링이 겹치면 돌풍·백아웃·결빙 착빙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교통·해상 운항 리스크가 급격히 커진다.
관측과 해석: 무엇이 신호이고, 무엇이 함정인가
썬더스노는 ‘번개가 친다’는 사실 자체보다, 언제 어디서 강한 강설 밴드가 폭발할지를 가늠하는 데 의미가 크다. 전형적 신호는 세 가지다. 첫째, 700~500hPa 층의 강한 한기 유입과 하층의 두꺼운 포화층이 겹친 날, 전선대·수렴선·지형상승대 위로 얕지만 뚜렷한 CAPE가 얹힌다. 둘째, 레이더의 쌍정편파 지수에서 그라우펠 서명이 늘거나, 고반사도 코어 주위로 ZDR 컬럼·ρHV 저하가 동반된다. 이는 혼합상 충전층과 강한 상승류의 간접 신호다. 셋째, 낙뢰 탐지망에 간헐적으로 찍히는 VLF/LF 신호와 지상 전자장 급변 기록이다. 다만 함정도 있다. 강한 적운 대신 층운형 강설이 길게 이어질 때 레이더 반사도만으로는 강설 밴드의 내부 대류를 과대평가하기 쉽고, 산악 난반사와 지상 클러터가 그라우펠 신호를 흉내 내기도 한다. 또 강설이 소리를 흡수해 천둥이 잘 들리지 않다 보니 체감이 ‘고요한 폭풍’처럼 왜곡된다. 그러므로 자료 판독에서는 동시성·일관성을 우선시해, 상층 기온 경도·수렴선 위치·지형 바람·수역 온도 등과 함께 읽는 태도가 필요하다.
영향과 함의: 겨울형 강수 예보에서 안전까지
썬더스노가 나타난다는 뜻은, 같은 시간 내 강설량이 평소보다 빠르게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과 같다. 좁은 밴드에서 내리는 습설은 도로·전선·수목에 큰 부하를 걸고, 돌풍이 결합하면 가시거리가 수십 m로 떨어지는 백아웃이 빈발한다. 공항·철도·해운 운영은 제설과 차단의 의사결정을 분 단위로 바꿔야 하고, 해안·호수 지역은 해빙·너울과 동시 관리가 필요하다. 도시권에서는 배수·제설·전력 수요가 한 번에 튀며, 급작스러운 착빙이 보행·교통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기후적 함의도 있다. 겨울 폭풍의 조직도가 바뀌고 수역과의 온도차가 커질수록, 국지형 해기차 대류와 썬더스노 빈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장기 통계가 더 필요하지만, 이미 북대서양·오대호·일본해 연안에서 중규모 밴드의 빈도와 강도가 수온·상층한기와 강하게 연동된다는 분석이 축적되고 있다. 요컨대 썬더스노는 ‘희귀한 기상 쇼’가 아니라 대기 열·수분·전기의 교환이 겨울 방식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알려 주는 신호다. 조건을 읽어내면 예측은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하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눈보라 속에서 울리는 둔탁한 천둥은, 겨울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실무적인 경고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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