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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산불 시즌 장기화와 ‘파이어 시즌’

📑 목차

    기후변화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보통 폭염과 홍수, 가뭄을 먼저 떠올리지만,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산불 역시 점점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예전에는 특정 달에만 집중되던 산불이 이제는 봄부터 가을, 심지어 겨울 초입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기간이 길어지는 현상을 두고 많은 연구자들이 파이어 시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단지 산불 건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불이 붙기 쉬운 기간 자체가 길어지고, 한 번 발생한 불이 더 크게 번지기 쉬운 조건이 갖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불은 산림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하지만,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이 겹치면 지역 사회와 생태계를 위협하는 재난으로 성격이 바뀐다. 산불 시즌 장기화의 원인과 특징을 이해하는 일은 앞으로의 기후 위험을 읽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산불

     

    산불이 잘 붙는 계절이 길어지는 원리

    산불이 일어나려면 연료, 점화원, 건조한 공기와 바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연료는 숲과 풀숲, 마른 낙엽과 가지 같은 가연성 물질을 뜻하고, 점화원은 낙뢰나 쓰레기 소각, 담배꽁초, 전선 스파크처럼 불씨를 제공하는 원인을 말한다. 여기에 기온이 높고 습도가 낮으며 바람이 강하게 불면, 작은 불씨도 빠르게 번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다.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더위가 길어지면, 눈이 녹고 비가 그친 뒤 산림과 초지가 건조해지는 기간이 길어진다. 예전에는 해마다 일정 기간 충분한 비와 눈이 내려 산림이 촉촉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봄철 눈이 빨리 녹고, 여름과 초가을에 고온과 가뭄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수분을 잃은 나무와 풀, 낙엽이 마치 거대한 화약고처럼 쌓이게 된다. 여기에 강한 바람과 번개, 인위적인 불씨가 더해지면 산불이 시작되고, 건조한 기간이 길수록 작은 불씨 하나가 대형 산불로 커질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파이어 시즌의 현실

    파이어 시즌이라는 표현은 북미와 호주, 남유럽처럼 계절성 산불이 잦은 지역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북미 서부에서는 과거보다 산불이 시작되는 시점이 앞당겨지고, 진화가 끝나는 시점은 뒤로 밀리면서 전체 산불 기간이 몇 주에서 한두 달 이상 길어졌다는 분석이 보고되고 있다. 호주에서도 여름과 초가을에 집중되던 대형 산불이 봄부터 자주 발생하고, 고온 건조한 날씨가 길어지면서 숲과 초지가 계속 불에 잘 타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향이 관측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으로는 봄철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많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늦가을과 겨울철 강원 동해안, 남부 산지에서 대형 산불이 이어진 사례가 있다. 이는 강수 패턴과 기온, 바람이 함께 바뀌면서 산림이 건조한 상태로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는 신호라 볼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과 함께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 늘어나면, 한 번 난 불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번질 수 있다.

     

    산불 시즌 장기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산불 시즌이 길어지면 피해의 양상도 달라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의 증가다. 산림과 맞닿아 있는 마을과 도시 외곽, 전원주택 단지, 관광지가 늘어날수록 산불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도 커진다. 긴 파이어 시즌 동안 주민과 소방 인력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한 번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진화 인력과 장비, 예산이 대규모로 투입된다. 대피 과정에서 도로가 막히거나 통신이 끊어지는 문제도 반복된다. 산불은 공기질에도 큰 영향을 준다. 넓은 면적의 산림이 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미세 입자는 바람을 타고 멀리 이동해, 불이 난 지역뿐 아니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의 하늘까지 뿌옇게 만든다. 호흡기 질환과 심혈관 질환이 악화되고, 어린이와 노인, 야외 노동자는 특히 큰 영향을 받는다. 산림이 소실되면 토양 유실과 산사태 위험이 커져, 비가 왔을 때 또 다른 재난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산불 시즌 장기화는 단지 불이 나는 기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연중 내내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변화다.

     

    산림과 사회의 적응,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기후변화로 인한 파이어 시즌 장기화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응 전략은 분명 존재한다. 우선 산림 관리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산불을 무조건 막고 끄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연료가 지나치게 쌓이지 않도록 숲을 관리하는 접근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림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소규모 계획 화재나 풀베기, 가지치기 등을 통해 불에 잘 타는 연료를 줄이는 시도를 한다. 산과 맞닿은 마을과 도시는 방화선을 확보하고, 나무와 건물 사이의 완충 공간을 만들며, 불에 취약한 건축 자재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산불 위험이 높은 계절에는 입산 통제와 캠핑 규제, 전선과 송전 설비 점검을 강화해 인위적인 점화를 줄일 필요가 있다. 주민 교육과 조기 경보 시스템도 중요하다. 산불 위험 등급 정보를 쉽게 확인하고, 대피 요령과 경로를 평소에 숙지해 두면 실제 위기 상황에서 판단과 행동이 빨라진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끝나는 캠페인이 아니라, 기후 시대에 맞춘 새로운 생활 규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불의 계절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기후변화 시대의 산불 시즌 장기화와 파이어 시즌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와 풍경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운 날씨와 가뭄, 강한 바람이 겹치는 시기가 늘어나면서 숲과 초지는 더 오랜 기간 동안 불에 탈 준비가 된 상태로 남게 된다. 한 번의 실수나 번개가 대규모 산불로 이어지기 쉬운 환경이 점점 넓어지는 셈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산불을 예외적인 재난으로만 보지 않고, 기후 시스템 변화의 한 표현이자 우리가 함께 관리해야 할 상시 위험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산림 관리와 도시 계획, 에너지와 토지 이용까지 폭넓게 살펴보며 파이어 시즌에 대비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긴 시간이 걸리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산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빈도와 규모, 피해를 줄이는 방향을 선택할 수는 있다. 불의 계절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는 결국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책임 의식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