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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 수분 감소와 농업 생산성,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

📑 목차

    여름철에 가뭄이 길어지면 뉴스에서는 저수율 부족이나 강수량 감소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실제로 작물이 자라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더 직접적인 요소는 땅속에 얼마나 물이 남아 있는지, 즉 토양 수분이다. 비가 잠깐 많이 와도 곧바로 흘러가 버리면 식물이 쓸 수 있는 물은 크게 늘지 않는다. 반대로 비가 조금밖에 오지 않아도 천천히 스며들고 오래 머물면 작물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바뀌고 기온이 오르면서, 많은 지역에서 토양 수분이 줄어드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당장 한두 해의 수확량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성과 식량 안보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토양 수분 감소가 농업과 식량 체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양 수분

     

    토양 수분과 작물 생육의 기본 원리

    토양은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라 공기와 물, 광물 입자, 유기물로 이루어진 복합 구조다. 비가 내리면 물은 토양 입자 사이의 빈틈으로 스며들어 저장된다. 이때 토양이 물을 머금을 수 있는 최대한의 상태를 포장용수량이라고 부르고, 식물이 더 이상 물을 뽑아 쓸 수 없을 만큼 마른 상태를 영구 시듦점이라고 부른다. 작물에게 중요한 것은 이 두 지점 사이, 즉 토양이 너무 질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은 구간이다. 이 범위 안에서 뿌리는 토양 수분과 함께 양분을 흡수하고, 잎은 기공을 열어 광합성을 한다. 토양 수분이 부족해지면 식물은 먼저 잎의 기공을 닫아 물 증발을 줄이려 한다. 그러나 그러면 이산화탄소도 덜 들어오게 되어 광합성량이 줄고, 결국 생장 속도가 느려지거나 수확량이 감소한다. 심한 경우에는 어린 잎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며,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는다. 반대로 토양에 물이 너무 많아 공기층이 부족해지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썩기 쉽다. 이처럼 토양 수분은 작물 생육의 기초 조건이기 때문에, 작은 변화도 수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후변화와 토양 수분 감소의 연결 고리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 변화는 토양 수분에 여러 통로를 통해 영향을 미친다. 먼저 기온이 오르면 대기와 토양에서 물이 증발하는 속도, 그리고 식물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증산 속도가 함께 빨라진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더운 날씨에서는 토양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는 셈이다. 둘째, 강수 패턴이 바뀌면서 비가 내리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여러 날에 나누어 잔잔하게 내리던 비가 이제는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집중호우는 토양 깊숙이 스며들기도 전에 지표면을 따라 흘러가 버리기 쉽고,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토양 침식까지 일으킨다. 셋째, 가뭄과 고온 현상이 반복되면 토양 표면이 굳어져 물이 스며들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 경우 비가 와도 지표면 유출이 늘어나 토양 수분 충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림 감소와 지나친 경작도 영향을 준다. 나무와 풀, 유기물이 줄어든 토양은 스펀지처럼 물을 붙잡아 두지 못해, 비가 와도 쉽게 마른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많은 지역에서 토양 수분 부족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농업 생산성과 지역 식량 체계에 나타나는 영향

    토양 수분 감소는 가장 먼저 작물의 생육과 수확량에서 드러난다. 논과 밭의 토양이 충분히 젖어 있지 않으면, 파종 후 발아율이 떨어지고 초기 생장이 늦어진다. 성장기에는 뿌리가 충분히 물을 흡수하지 못해 잎이 작아지고 줄기의 성장이 늦어지며, 열매나 이삭이 여무는 시기에 수분이 부족하면 알이 참지 못하고 쭈글쭈글해지는 일이 많다. 가뭄이 반복되는 지역에서는 물 부족을 견디기 위해 작부 체계를 바꾸거나, 물을 많이 먹는 작물에서 상대적으로 건조에 강한 작물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은 쉽지 않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지하수 관정을 깊게 파거나 관개시설을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하수 고갈과 토양 염류 축적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바닷가 근처에서는 지하수를 과도하게 퍼올리면 바닷물이 스며들어 토양과 지하수가 짜게 변하는 염수 침투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한 농가나 한 해의 수확 문제를 넘어, 특정 지역 전체의 농업 생산 기반을 약하게 만든다.

     

    세계 식량 안보와 지역 사회에 미치는 파장

    토양 수분 감소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면, 세계 식량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요 곡창지대의 수분 부족으로 생산량이 줄어들면, 세계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요동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밀과 옥수수, , 콩처럼 여러 나라가 수입에 의존하는 주요 곡물은 생산국의 토양 수분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두 해의 흉작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토양 수분 부족이 누적되면, 특정 지역은 수출 여력이 줄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수입 여력이 부족한 나라들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농촌 지역에서는 물 부족과 수확 감소가 소득 불안정과 이주 압력으로 이어진다. 젊은 세대가 농업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면, 농촌의 생산 인력과 지식도 함께 줄어든다. 생태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토양 수분이 줄면 미생물과 토양 생물이 활동하기 어려워져 유기물 분해와 양분 순환이 느려지고, 토양 구조가 불안정해진다. 장기적으로는 토지 황폐화와 사막화 위험이 커지며, 이는 다시 농업 생산성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토양 수분을 읽는 새로운 관점

    토양 수분 감소와 농업 생산성, 식량 안보의 연결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기후변화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축이다. 강수량과 기온 같은 큰 숫자 뒤에는, 땅속에서 조용히 줄어들고 있는 물의 저장고가 있다. 토양 수분은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최소 조건이자, 한 지역의 농업이 버틸 수 있는 숨겨진 완충 장치다. 이 완충 장치가 약해지면, 작은 가뭄과 고온에도 수확량이 크게 출렁이고, 농가와 지역 사회는 점점 더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앞으로 농업과 식량 정책을 논의할 때에는 단순한 생산량 통계를 넘어서, 토양 수분 상태와 변화를 함께 살피는 관점이 필요하다. 빗물의 스며듦을 높이는 토양 관리, 숲과 초지의 보호, 물 사용 효율을 높이는 농업 기술은 모두 토양 수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토양 속 물의 움직임을 기후 신호로 읽어내는 사회일수록, 예상치 못한 식량 위기에도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