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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1.5도 목표, 2도 한계 같은 말이 나올 때면 꼭 함께 등장하는 것이 RCP, SSP 같은 낯선 기호와 숫자다. RCP 2.6, RCP 8.5, SSP1, SSP3 같은 이름을 보고 있으면 마치 미래를 이미 계산해 둔 비밀 코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숫자들을 “기후 종말 예언”으로, 또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는 가상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후 모델과 미래 시나리오는 특정 연도의 온도와 강수량을 정확히 맞히려는 점쟁이가 아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 선택과 배출 경로에 따라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비교해 보는 도구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기후 모델이 무엇인지, RCP와 SSP 시나리오가 어떤 가정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숫자가 말해 주는 것과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본다.

기후 모델은 어떻게 미래를 계산하는가
기후 모델은 대기와 해양, 빙하, 육지, 식생 같은 지구 시스템을 물리 법칙과 수식으로 표현한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지구를 가로, 세로, 높이 방향으로 촘촘한 격자로 나누고, 각 칸마다 온도와 습도, 바람, 해류 속도, 구름 양, 이산화탄소 농도 같은 값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산해 나가는 방식이다. 물리 법칙 자체는 잘 알려져 있지만, 구름이나 강수, 식생 변화처럼 작은 규모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현상까지 모두 직접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관측 자료와 실험을 바탕으로 만든 경험적 공식과 가정이 함께 사용된다. 이런 이유로 기후 모델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과거 수십 년의 기온과 강수, 해빙 면적 변화 등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 계속 검증하면서 모델을 개선해 왔고, 여러 기관의 모델이 공통으로 보여 주는 큰 흐름은 매우 일관된 편이다. 온실가스 농도가 늘어날수록 지표 온도가 장기적으로 상승하고, 극한 기온과 강수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결과는 서로 다른 모델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RCP와 SSP, 두 가지 축으로 그리는 미래 시나리오
기후 모델이 미래를 계산하려면, 앞으로 인간 사회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것이 RCP와 SSP라는 두 가지 틀이다. RCP는 대표 농도 경로라는 뜻으로, 2100년경에 온실가스가 대기 에너지 균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복사강제력이라는 값으로 구분한다. 숫자는 1제곱미터당 와트 수를 나타내며, RCP 2.6은 강력한 감축 정책으로 온실가스 농도를 낮춘 경우, RCP 8.5는 추가적인 감축 노력 없이 배출이 크게 늘어나는 경우를 가정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SSP는 공유사회경제경로로 번역되며, 인구 증가, 도시화, 교육 수준, 불평등, 기술 발전 속도, 국제 협력 수준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여러 유형으로 나눈 것이다. 지속가능성과 불평등 완화를 지향하는 SSP1, 지금과 비슷한 흐름을 유지하는 SSP2,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심한 SSP3, 화석연료 의존이 강하게 유지되는 SSP5처럼 다양한 경로가 준비되어 있다. 실제 분석에서는 SSP와 온실가스 경로를 조합해 SSP1-2.6, SSP2-4.5처럼 표기하며, 각 조합이 어떤 세상과 배출 경로를 가정하는지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사회적 선택과 배출 정책을 택할 때 기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 온도와 위험의 큰 그림
RCP와 SSP 경로를 기후 모델에 넣어 계산하면, 지구 평균 기온이 얼마나 상승할지, 해수면이 어느 정도 올라갈지, 폭염·폭우 같은 극한 현상이 얼마나 자주 나타날지에 대한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강한 감축 경로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안팎으로 억제할 가능성이 생기지만, 고배출 경로에서는 3도, 4도를 넘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숫자는 각국이 앞으로 얼마만큼 더 배출할 수 있는지, 이른바 탄소 예산을 계산하는 기준이 된다. 해수면 상승 전망은 해안 방조제 높이와 도시 개발 범위를 정하는 데 참고되고, 폭염과 폭우 증가 전망은 전력망 설계, 도시 녹지 계획, 하천과 배수 시설 확충 계획에 반영된다. 농업과 보건 분야에서는 특정 시나리오에서 가뭄과 홍수, 열대야와 감염병 위험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지 분석해 작물 재배 지도와 보건 대책을 수정한다. 요약하면 이러한 숫자들은 “지금과 같은 길을 계속 갈 때와, 감축과 적응 노력을 강화할 때 미래 위험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큰 그림으로 보여 주는 데 강점을 가진다.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 불확실성과 선택의 여지
반면에 기후 모델과 RCP·SSP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첫째, 시나리오는 예언이 아니라 조건부 가정이다. RCP 4.5나 SSP2-4.5라는 이름이 있더라도, 실제 세계가 그 경로를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책 방향과 기술 발전, 국제 협력의 수준이 달라지면 언제든 다른 경로로 옮겨 갈 수 있다. 둘째, 지구 평균 2도, 3도라는 숫자는 지역별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2도 상승이라도 어떤 지역은 폭염과 가뭄이 극단적으로 심해질 수 있고, 다른 지역은 집중호우와 태풍이 늘어날 수 있다. 모델이 지역별 차이를 어느 정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개별 도시 규모의 국지적 호우나 특정 해의 태풍 경로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숫자 안에는 사회의 대응 방식과 불평등 구조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같은 온난화 수준에서도 방재 시설과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지역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반면, 취약 계층이 많은 지역은 작은 충격에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넷째, 갑작스러운 정치적 위기나 예기치 못한 기술 혁신, 새로운 국제 협력 체제가 등장하는 시점과 영향은 어떤 시나리오에도 그대로 들어 있기 어렵다. 결국 숫자는 기후 시스템의 물리적 반응을 보여 주는 데는 강하지만, 사회적 선택과 가치 판단까지 대신 이야기해 주지는 못한다.
시나리오를 미래의 나침반으로 활용하기
정리하면 기후 모델과 RCP·SSP 시나리오는 미래를 이미 정해 놓은 운명을 알려 주는 도구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 중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보여 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수록 위험이 줄어들고, 늦게 행동할수록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큰 방향성이다. 반대로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은 그 길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누구의 부담을 줄이고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결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 시나리오 하나를 과장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숫자가 어떤 전제와 가정 위에 서 있는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요소와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된 요소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시민과 정책 결정자, 기업과 지역사회가 이런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수록, 기후위기 속에서도 보다 준비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래를 정확히 맞힐 수는 없지만, 다양한 경로를 미리 그려 보고 지금부터 방향을 조정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기후 모델과 시나리오를 둘러싼 숫자를 단순한 공포나 낙관의 근거로 삼기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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