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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말과 하마신, 사막 바람이 만든 거대한 먼지의 벽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위성 사진을 들여다보면, 어느 날은 도시와 국경, 강줄기까지 모두 흐릿하게 덮어 버린 거대한 황갈색 띠가 나타난다. 현지에서는 이런 현상을 그저 먼지폭풍이라 부르지만, 그 배경에는 샤말, 하마신처럼 이름을 가진 계절풍이 있다. 이 바람은 단순한 강풍이 아니라, 넓게는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면에서 미세한 모래와 먼지를 들어 올려 광역 모래폭풍을 일으키는 동력이다. 우리에게는 뉴스 속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황사와 미세먼지, 기후변화 논의까지 이어 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주제이기도 하다. 계절풍이 어떻게 모래폭풍을 만들고, 그 결과가 사람들의 일상과 건강, 사회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샤말, 페르시아만을 따라 부는 계절풍의 얼굴
샤말은 주로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페르시아만 연안을 중심으로 부는 북서풍 계열의 계절풍을 가리킨다. 현지 언어에서 샤말은 단순히 북쪽 바람을 의미하지만, 기상학에서는 특정 시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강한 건조 바람을 지칭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한다. 이 바람은 겨울과 초여름, 특히 6월 전후에 자주 강화되며,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고 길게는 며칠에서 일주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사막과 건조지대 위를 지나며 지표면의 모래와 실트를 끝없이 들어 올리고, 이 입자들이 수백에서 천 킬로미터 이상 하류 지역까지 날아가면서 광역적인 모래폭풍을 만든다.
샤말이 강해질 때는 지상의 기압 배치와 상층의 바람 구조가 동시에 맞물린다. 북서쪽 건조 고기압과 남동쪽 저기압 사이에서 기압차가 커지면, 대기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 빠르게 흐르려 한다. 이때 사막 지형은 바람의 에너지를 모래 입자에 전달하는 거대한 마찰판이 된다. 입자는 처음에는 지표 가까이에서 튀어 오르며 이동하지만, 바람 세기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더 가벼운 먼지는 수백 미터 상공까지 끌어올려진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눈앞의 먼지가 아니라, 항공기와 위성에서도 뚜렷이 관측되는 거대한 먼지 장벽으로 확장된다. 샤말 모래폭풍이 발생하면 시정이 수십 미터까지 떨어지기도 하고, 항공편 결항과 도로 폐쇄, 항만 운영 중단이 동시에 나타난다. 전력망과 통신 시설, 해양 플랫폼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인프라 리스크의 한 종류로 다뤄진다.
하마신, 뜨거운 봄 바람이 실어 나르는 먼지
하마신은 주로 이집트와 동지중해 연안, 시나이 반도 일대에서 잘 알려진 계절풍이다. 봄철에 남쪽 사막에서 북쪽 해안으로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바람을 하마신이라 부르는데, 이름 자체가 ‘쉰 날’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 바람이 활발해지는 기간은 대략 50일 안팎이라는 경험적 인식이 지역 사회에 오래 남아 있다. 하마신이 부는 날에는 기온이 평소보다 갑자기 치솟고, 상대습도가 10%대까지 떨어지며, 하늘은 누런 먼지로 흐릿해진다. 창문 틈새로도 고운 모래가 스며들고, 코와 목이 쉽게 마르며, 눈이 따갑고 가렵다는 호소가 잦아진다.
하마신을 일으키는 배후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상공을 가로지르는 상층 기압골, 이동성 저기압이 있다. 사하라 고원의 뜨거운 공기가 저기압 전면에서 북쪽으로 빨려 올라가면서, 지상에는 남풍 또는 남서풍이 강하게 분다. 이 과정에서 사막 지형의 건조한 토양이 벗겨지고, 비가 적은 겨울을 보낸 후 느슨해진 지표면의 입자들이 쉽게 비산한다. 지중해 연안 도시들은 평소에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혜택을 누리지만, 하마신이 몰려올 때만큼은 사막 기후를 잠시 ‘전세 내는’ 셈이 된다.
이 바람이 만드는 모래폭풍은 단지 시야를 가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열과 건조, 미세입자의 삼중 효과가 사람 건강에 동시에 부담을 준다. 호흡기 질환자나 심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은 증상이 악화될 수 있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탈수와 열사병 위험이 높아진다. 눈을 자주 비비게 되면서 각막 손상이 늘어나고, 마스크와 보호경, 실내 대피가 하나의 생활 패턴처럼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 생산성과 야외 활동, 교통량이 줄어들고, 단기간이라도 지역 경제에 타격이 가해진다.
광역 모래폭풍이 남기는 환경·사회적 흔적
샤말과 하마신이 일으키는 모래폭풍은 한 번 휘몰아쳤다가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 지역의 환경과 사회를 장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진다. 반복되는 모래폭풍은 토양 상층의 유기물과 미세 입자를 지속적으로 빼앗아 가며, 남은 토양은 더 거칠고 척박해진다. 식생이 약해진 땅은 다시 바람에 취약해지고, 바람에 취약한 땅은 더 많은 먼지를 배출하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대규모 모래폭풍이 육지에서 바다로 상당한 양의 미네랄을 공급해, 해양 생태계에 일시적인 비료 역할을 한다는 결과도 있지만, 인간이 사는 도시와 농경지에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피해가 눈에 띈다.
도시 인프라 관점에서 보면, 모래폭풍은 건물 외벽과 창, 기계 설비, 도로 포장, 배수 시설 등에 지속적인 마모와 막힘을 일으킨다. 필터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정비 비용이 늘어나며, 산업 시설에서는 장비 오작동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진다. 항공기와 공항 레이더, 도로의 교통 센서, 태양광 발전 시설처럼 야외에 노출된 설비는 모래에 의한 마모와 오염을 피하기 어렵다. 전력과 통신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부터 필터링과 밀폐, 청소 용이성을 고려한 구조가 필요해진다.
사람들의 일상도 바뀐다. 특정 계절이 되면 외출과 야외 행사, 농작업 기준이 모래폭풍 예보를 따라 움직이고, 학교 휴업이나 재택근무 권고가 하나의 ‘계절 메뉴얼’처럼 굳어지기도 한다. 언론과 SNS는 모래폭풍이 접근할 때마다 위성사진과 예보 지도를 공유하고, 각 가정은 창문 틈새를 테이프로 막거나 공기청정기 필터를 점검하는 루틴을 반복한다. 이러한 적응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가장 취약한 계층은 적응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냉방과 공기정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가구, 실내 노동으로 전환하기 힘든 야외 노동자, 건강 취약 계층부터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맺음말
샤말과 하마신이 일으키는 광역 모래폭풍은, 단지 머나먼 사막의 기이한 풍경이 아니라 계절의 패턴과 기압 배치, 토양과 식생, 도시 인프라와 사람의 건강이 얽힌 복합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이 바람은 태곳적부터 불어왔지만, 인구와 도시, 산업 시설이 사막 주변으로 확대되면서 피해의 양상과 스케일이 달라졌다. 기후변화와 사막화가 진전되면 이 같은 모래폭풍의 강도와 빈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먼지와 모래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기에, 이 문제는 어느 한 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반도에서 겪는 황사와 미세먼지, 건조한 바람 또한 결국 같은 대기 순환 속에 있다. 계절풍이 만든 모래폭풍을 이해하는 일은, 자신의 삶이 서 있는 기후와 환경의 조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이해 위에서야 비로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도시 계획과 보건 대책, 에너지와 토지 이용의 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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