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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Magnitude)와 진도(Intensity)의 차이 – 지진의 세기 계산법

📑 목차

    규모와 진도, 헷갈리기 쉬운 지진 세기의 두 얼굴

    지진이 발생하면 뉴스 화면 하단에 대개 두 가지 숫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규모 5.0”처럼 표시되는 값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 진도 와 같은 숫자 혹은 등급이다. 둘 다 지진의 세기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지표다. 규모는 지진이 방출한 에너지의 절대량을 나타내는 수치이고, 진도는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느낀 흔들림과 피해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다시 말해 규모는 지진 그 자체의 크기이고, 진도는 어느 지역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설명한다. 이 둘을 구분해 이해하지 못하면,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왜 어떤 지역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큰 피해가 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지진 세기를 둘러싼 이 두 얼굴을 차분히 구분해 보는 일은 지진 뉴스를 이해하는 기본이 된다.

     

    규모와 진도

     

    규모, 지구가 방출한 에너지의 절대값

    규모(Magnitude)는 지진이 발생할 때 단층에서 방출된 에너지의 양을 로그 스케일로 표현한 값이다. 예전에는 리히터 규모가 널리 쓰였지만,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모멘트 규모가 주로 사용된다. 모멘트 규모는 단층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얼마나 넓게 미끄러졌는지를 바탕으로 에너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규모 값이 1 증가하면 에너지는 약 32배 커진다. 규모 6.0 지진은 5.0 지진보다 10배 더 강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된 에너지 자체가 32배 크다는 의미다. 규모는 지진계가 기록한 지진파의 진폭과 주기를 분석해 산출하므로, 지구 어디에서 관측한 자료인지에 상관없이 같은 지진에는 같은 규모가 부여된다. 진원에서 멀리 떨어진 관측소라 하더라도 적절한 보정을 통해 동일한 규모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규모는 지진의 절대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의 지진을 비교하는 데 유용하다. 역사 속 대지진을 정리한 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숫자가 바로 이 규모다.

     

    진도, 사람들이 실제로 느낀 흔들림의 강도

    진도(Intensity)는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느낀 흔들림, 건물과 지형이 받은 영향, 물건의 흔들림 정도 등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기상청 진도 계급은 집 안의 그릇이 움직였는지, 사람 대부분이 흔들림을 느꼈는지, 벽에 금이 갔는지 등 구체적인 현상에 따라 0에서 까지 단계적으로 나뉜다. 일본의 경우에는 계기 관측을 포함한 독자적인 진도 계급을 사용하고, 미국에서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이 대표적이다. 진도는 같은 지진이라도 관측 위치에 따라 값이 다르게 나타난다. 진앙과 가까운 곳은 진도가 높고, 멀어질수록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하 지질 구조나 지표 조건에 따라 이 단순한 거리 효과가 뒤집히기도 한다. 단단한 암반 위의 도시는 진폭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나는 반면, 부드러운 퇴적층 위의 도시는 진동이 증폭되어 진도가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다. 그래서 진도는 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체감 경험과 실제 피해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같은 규모, 다른 진도가 나타나는 다양한 사례

    현실 속 지진 사례를 보면 규모와 진도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규모 7.0 내외의 큰 지진이 인구 밀도가 낮은 해역 깊은 곳에서 발생할 경우, 진앙 부근에 사람이 거의 없어 피해가 적을 수 있다. 반대로 규모 5.0대의 비교적 작은 지진이 도심 얕은 깊이에서 일어나면, 진도는 높게 나타나고 건물 균열이나 가구 전도 같은 실제 피해가 집중된다. 또한 지하 지질이 복잡한 지역에서는 진앙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진도가 더 크게 관측되는 경우도 있다. 특정 방향으로 지진파가 잘 전달되는 지질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규모가 같더라도 진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지진의 깊이, 단층의 방향, 지하 구조, 지표 조건, 건축물 특성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반대 사례도 존재한다. 규모는 분명히 다르지만, 규모가 더 작은 지진이 더 큰 진도를 기록하는 경우다. 깊은 곳에서 일어난 큰 지진보다, 얕은 곳에서 발생한 중간 규모 지진이 지표에 더 강한 충격을 주어 주거 지역에 더 큰 피해를 남기는 식이다. 따라서 규모가 크다 = 피해가 무조건 크다는 단순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 재난 규모를 판단할 때는 규모와 함께 최대 진도 분포를 함께 봐야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규모와 진도의 활용, 방재 정책과 개인 안전

    과학자와 행정기관은 규모와 진도 정보를 서로 다른 목적으로 활용한다. 규모는 에너지의 절대값을 보여 주기 때문에, 특정 단층이나 지역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을 추정하고 장기적인 위험 지도를 작성하는 데 활용된다. 건축 구조 기준을 정할 때도 과거에 관측된 최대 규모와 지질 구조를 고려해 설계하므로, 규모 정보가 기본 자료가 된다. 반면 진도는 어느 지역이 실제로 얼마나 흔들렸는지, 피해가 어디에 집중되었는지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재난 대응 단계에서 구조 인력과 장비를 어느 지역에 우선 배치할지 결정할 때, 진도 분포도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또한 조기경보 시스템에서는 규모가 빠르게 추정될수록 더 넓은 지역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지만, 사건 직후 피해 상황을 평가할 때는 현장 감지 센서가 기록한 진도 데이터가 핵심이 된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규모 정보만 보는 것보다, 거주 지역의 예상 최대 진도와 과거 진도 기록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실제 대비에 더 도움이 된다. 내진 설계가 어느 수준까지 되어 있는지, 건물 노후도는 어떠한지와 함께 고려하면 지진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을 가늠할 수 있다.

     

    지진 세기를 이해하는 균형 잡힌 시선

    규모와 진도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도구다. 규모는 이번 지진은 지구 에너지 방출 측면에서 얼마나 큰 사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진도는 어디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강하게 흔들림을 느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지진의 전모를 설명하기 어렵다. 규모만 보면 지구 물리학적 사건의 크기는 알 수 있지만, 실제 피해 정도와는 거리가 생길 수 있다. 진도만 보면 현장의 체감 피해는 알 수 있지만, 그 지진이 전 지각 구조 속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진 뉴스를 접할 때 규모와 최대 진도, 진원 깊이, 진앙 위치를 함께 보는 습관을 들이면, 같은 숫자라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지만, 그 세기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규모와 진도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지진을 둘러싼 막연한 공포를 줄이고 보다 현실적인 대비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지진 세기를 읽는다는 것은 숫자 뒤에 숨은 지구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경험을 함께 이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