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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위험을 깨운 두 번의 흔들림
2016년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고, 2017년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이어졌다. 두 사건은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오래된 통념을 단숨에 흔들었다. 수도권을 포함한 넓은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되었고, 학교와 주거지, 도로 시설에 손상이 보고되었다. 국내 지진관측망이 촘촘해진 뒤 기록된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두 번의 흔들림은 한반도의 지진 잠재력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진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판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자연현상이며, 상대적으로 활동이 적었던 지역에서도 축적된 응력이 방출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포항 지진은 그 현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지구물리학적 배경
한반도는 환태평양 조산대의 중심부에 속하지 않지만, 동해 동쪽의 태평양판과 필리핀해판, 서쪽의 유라시아판이 광역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영향권에 있다. 지각판이 직접 충돌하는 경계가 국내에 있지는 않더라도, 주변 판의 움직임이 유라시아판 내부에 응력을 전달한다. 이렇게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대륙내 지진’이라고 한다. 대륙내 지진은 보이지 않는 단층대에서 갑작스러운 파열로 발생하며 반복 주기가 길고, 과거 기록이 희소해 위험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지진의 크기를 나타내는 규모는 단층 파열에서 방출된 에너지량을 로그 스케일로 표현한 값이고, 흔들림의 체감 정도를 뜻하는 진도는 관측 위치와 구조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규모라도 진도는 지표 지질, 지하 구조, 건물의 고유진동수 등 지역 특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경상분지 일대의 퇴적암·화산암 분포와 단층 구조, 연약 지반의 증폭 효과는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흔들림을 키울 수 있고, 이는 도시 인프라의 손상 가능성과 직결된다. 결국 한반도의 낮지 않은 지진 위험도는 “판 경계가 아니니 안전하다”는 단순한 판단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경주·포항 사례가 남긴 과학적 단서와 논의
2016년 경주 지진은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국내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본진 전후로 다수의 여진이 이어졌고, 단층의 주향·경사 방향이 분석되면서 동남권의 잠재 단층대가 다시 주목받았다. 다음해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은 도심지에 더 근접해 직접적인 피해가 컸다. 액상화 흔적, 저층 벽체 균열, 비구조요소 낙하 등이 보고되며 도시형 재난의 양상을 드러냈다.
포항 지진과 관련해서는 지열발전 과정의 유체 주입이 단층 응력 상태를 교란해 지진 발생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유발지진’ 논의가 진행되었다. 유발지진은 인위적 활동이 지하 응력·간극수압을 변화시켜 지진 발생 임계조건을 낮추는 현상으로, 자연 지진과 구별을 위해 미소지진 시퀀스, 주입 시점과의 상관성, 단층 기하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국내외 조사에서 포항 사례는 유발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평가되며, 지하자원 개발과 지진위험 관리의 경계 설정을 촘촘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반면 경주 지진은 지역 단층대의 자연적 응력 방출로 해석되며, 동일 권역에서도 발생 원인과 조건이 다양함을 시사한다. 두 사건은 관측 기술, 지반 모형, 위험도 지도 갱신에 필요한 실증 자료를 제공했고, 향후 내륙 단층 연구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영향과 위험 거버넌스의 과제
지진은 물리적 피해를 넘어 사회적 비용을 증폭시킨다. 학교의 수업 중단, 상가 영업 차질, 공공시설 점검과 복구, 주택 수리와 임시 거주 비용은 지역 경제에 파급된다. 건축물의 구조 안전성 못지않게, 내부 설비와 마감재 같은 비구조 요소의 안전 기준, 문화재와 병원의 기능 유지 계획, 정보 전달 체계가 중요하다. 특히 국내 도시의 중저층 철근콘크리트와 조적 혼합 구조물은 내진 보강 수준과 시공 품질에 따라 성능 격차가 크다. 위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과장과 축소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 과장은 공포를 키워 비합리적 행동을 유발하고, 축소는 대비 투자를 지연시킨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범위의 수치와 시나리오를 시민에게 제공하는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 에너지·산업 시설, 학교·병원 등 중요시설의 기능 유지 계획은 지역 단층 정보와 지반 특성, 공급망 의존도를 반영해 단계적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열·지하저장 등 지하공간 활용 사업은 사전 지진위험 평가, 미소지진 실시간 감시, 운영 중단 기준을 명확히 하는 규범을 갖추어야 한다.
안전지대라는 환상에서 위험관리 사회로
경주와 포항의 두 지진은 한반도의 지진 위험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 과제로 전환시켰다. 판 경계에서 멀다는 이유로 위험을 단정할 수 없고, 단층의 존재와 지반 증폭, 도시 구조의 취약성이 겹치면 중규모 지진도 큰 사회적 피해로 이어진다. 경주는 자연 단층 활동의 대표 사례, 포항은 인위적 요인이 개입할 수 있는 경계 사례로서,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진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불확실성을 줄이는 지식 축적과 제도적 대비가 최선이다. 관측망 확충, 단층 지도 정밀화, 내진 보강의 단계적 확대, 중요시설의 기능 유지 계획, 지하개발의 위험 기준은 상호 보완적 장치다. 안전지대라는 말은 안도감을 주지만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한반도는 지진이 적은 지역일 수 있으나, 결코 무풍지대는 아니다. 두 번의 흔들림이 남긴 핵심은 단순하다. 지진은 드문 사건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상수이며, 과학과 제도가 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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