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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엘모의 불 (St. Elmo’s Fire) · 정전기 방전과 첨두 효과 번개가 오기 전, 어둠 속의 푸른 불빛성엘모의 불은 뇌우가 다가올 때 배의 돛대, 교회 첨탑, 비행기 날개 끝, 난간과 안테나 같은 날카로운 금속 끝에서 피어오르는 푸른빛 발광을 가리킨다. 촛불처럼 타오르는 화염이 아니라, 공기 자체가 얇게 빛나는 전기 광휘다. 밤바다에서 선원들은 이 빛을 길잡이로 여겨 성인의 이름을 붙였고, 항공기 조종사들은 어둡고 습한 구름 속에서 조용한 윙윙음과 함께 유리 전면, 피토관, 윙릿 가장자리에 퍼지는 보랏빛 광막을 목격해 왔다. 색조가 남청·자주에 가까운 까닭은 질소 분자의 여기와 해리-재결합 과정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즉 이 현상은 물질이 타는 화학 불꽃이 아니라, 강한 전기장이 공기를 전리시키며 만드는 코로나 방전의 한 얼굴이다. 첨두 효과와 코로나 방전의 문법성엘모..
야광운, 한여름 밤의 은빛 구름 (Noctilucent Clouds) · 중간권 미세운과 관측 시즌 한여름 밤의 은빛 레이스, 야광운의 정체야광운은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뒤에도 하늘 높은 곳에서 은청색 광택을 띠며 남는 얇은 구름층을 가리킨다. 일반 구름이 주로 대류권(지상에서 대략 0~12km)에서 만들어지는 데 비해, 야광운은 중간권 하부 약 80~85km라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고도에서 형성된다. 이 고도에서는 공기가 매우 희박하고, 한여름에 오히려 기온이 가장 낮아지는 역전적 열 구조가 나타난다. 태양이 이미 진 뒤에도 그 높은 층만은 햇빛을 비스듬히 받아 산란시키므로 지상에서는 어스름 속에 하늘이 어둡지만, 중간권 얼음 미세입자 층은 은빛으로 떠오른다. 얇은 띠, 섬유, 물결, 그물무늬가 시시각각 바뀌며, 낮은 구름과는 시차가 뚜렷해 같은 하늘에서도 서로 다른 높이의 두 세계가 겹쳐 보인다..
홀펀치 클라우드 (Fallstreak Hole) · 빙정 씨앗과 과냉각 물방울 구멍 난 구름의 첫인상: 홀펀치 클라우드라는 별명하늘에 동그랗거나 타원형의 구멍이 뚫리고, 그 중심에서 눈기둥처럼 흰 줄기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독특한 구름을 ‘홀펀치 클라우드’ 혹은 ‘폴스트릭 홀’이라 부른다. 겉보기에는 구름 일부가 갑자기 사라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름 미세물리의 전형적 전환—과냉각 물방울에서 얼음으로의 상변화—이 급속히 일어난 자리다. 얕은 고도 층운·고적운이 넓게 퍼져 있으면서 구름 꼭대기 온도가 대략 –10℃에서 –25℃ 범위에 들 때, 특정 지점에서 얼음결정의 씨앗이 갑자기 많아지면 그 주변 물방울이 빠르게 증발하며 구멍이 커진다. 중심부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밝은 줄기는 얼음입자 무리(폴스트릭, 보풀눈 기둥)이며, 건조한 공기층을 지나며 증..
파타 모르가나 (Fata Morgana Mirage) · 다층 온도역전이 만드는 상상 속 섬 파타 모르가나의 첫인상과 명칭의 뿌리파타 모르가나는 지평선 부근의 물체가 기이하게 늘어나거나 잘려 보이고, 때로는 없는 섬과 성채가 공중에 떠오른 듯 나타나는 복합 신기루를 가리킨다. 같은 지점에서도 어떤 날은 수평선 위로 뾰족한 탑이 솟고, 다른 날은 성벽 같은 층이 포개져 움직인다. 이름은 아서왕 전설의 요정 모건 르 페이에서 왔는데, 뱃사람들이 지중해와 북해에서 본 환상을 요정의 장난으로 여긴 데서 유래했다. 오늘날의 설명은 명료하다. 얕고 고르게 깔린 다층 온도역전이 대기의 굴절률 구배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고, 여러 고도에서 광선이 차례로 굽거나 되꺾이면서 원거리 상이 중첩·반전·절단되어 보이는 것이다. 일반 신기루가 한 겹의 역전에서 생기는 단순한 위상 반전이라면, 파타 모르가나는 두 겹 이..
해빙무·증기안개 속 초저시정 (Steam Fog) · 따뜻한 물+차가운 공기 교차 따뜻한 물과 차가운 공기가 만날 때해빙무, 증기안개, 바다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상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수면 위로 매우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흘러들 때 수면과 공기 경계에서 하얀 연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가리킨다. 멀리서는 얕은 구름 띠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물결을 따라 피어오르는 기둥이 생겼다가 사라지며 시정이 순식간에 변한다. 겨울 강과 호수, 항만의 수로, 바닷빙의 틈새에서 특히 잦고, 한랭 이류가 강한 날 새벽에 도심 하천에서도 드물지 않게 목격된다. 표면적 풍경은 고요하지만, 경계층에서는 열과 수증기 교환, 난류 혼합, 응결과 재증발이 초 단위로 반복되어 작은 날씨가 만들어진다. 단순한 물안개가 아니라, 열적 대조가 만든 미세대기 공정이 눈앞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형성 원리와 미세물리..
일출·일몰의 초록섬광 (Green Flash) · 대기 굴절과 신기루의 역할 초록섬광이란 무엇인가초록섬광은 일몰의 마지막 몇 초, 혹은 일출의 첫 몇 초에 태양 원반 상단에서 초록빛이 순간적으로 분리되어 번쩍이거나 얇은 초록 테두리로 남는 대기광학 현상이다. 육안으로는 찰나의 반짝임처럼 스치지만, 배후에는 대기의 굴절과 분산, 층상 구조가 만든 정교한 색 선택이 작동한다. 태양 고도가 낮아지면 햇빛은 지표 가까운 두꺼운 공기층을 길게 비스듬히 통과하고, 그 과정에서 파장이 짧은 성분이 더 크게 꺾이는 분산이 누적된다. 동시에 고도에 따라 약간씩 다른 굴절률을 가진 층들을 지나며 광선 경로가 점진적으로 휘어, 지평선 아래에 내려간 태양 상단이 여전히 보이는 ‘들림’이 생긴다. 보통은 난류와 미세입자 산란 때문에 색차가 씻겨 보이지 않지만, 시정이 맑고 온도 역전으로 경계가 정돈된 ..
서리 예술: 서리꽃·서리무늬 (Hoarfrost & Window Frost) · 결정 성장의 패턴 과학 서리가 그리는 도면서리는 대기 중 수증기가 액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얼음 결정으로 승화해 표면에 달라붙는 현상이다. 첫눈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표와 사물의 표면 위에서 조용히 자라난다. 맑고 차갑고 바람이 약한 밤, 지면이 방사냉각으로 급격히 식으면 그 위의 얇은 공기층이 이슬점 아래로 떨어지고, 과포화된 수증기가 표면의 미세 돌기나 먼지, 긁힌 자국 같은 이질핵에서 결정을 틔운다. 이때 성장하는 모양은 단순한 눈송이의 축소판이 아니다. 표면의 열전달, 수증기 공급, 미량 불순물, 결정학적 비대칭이 서로 얽히며 극도로 다양한 패턴을 만든다. 풀잎과 가지를 털처럼 덮는 서리꽃, 창문 유리 위에 양치류처럼 번지는 서리무늬는 단지 냉각의 부산물이 아니라, 미시 세계의 규칙과 경계 조건이 ..
렌즈구름의 무지개빛 (Lenticular Clouds with Iridescence) · 산악파와 회절의 만남 산 위에 깔린 정지파의 캔버스, 렌즈구름과 색의 첫인상렌즈구름은 산맥을 넘어 흐르는 공기가 상하로 진동하며 만든 정지파의 봉우리에서 얇게 응결한 구름이다. 타원형 접시, 층이 겹겹이 쌓인 빵처럼 보이는 모양 때문에 눈에 띄며, 바람이 거세도 구름 자체는 산 하류의 특정 자리에 거의 고정된 듯 머문다. 이 구름 가장자리에 은은한 분홍, 연둣빛, 청보라의 띠가 얹히면 사람들은 무지개빛 렌즈구름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의 색은 일반 무지개처럼 물방울 내부 반사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두께의 구름막에서 일어난 회절과 간섭의 결과다. 산악파가 만든 정돈된 유동이 구름 가장자리를 매우 매끈하고 얇게 다듬고, 이 경계층을 지난 태양광이 파장에 따라 다른 정도로 굽어지며 색의 층을 분리한다. 즉, 파동의 기하와..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 극지처럼 보이는 도시의 겨울 아침 반짝이는 입자들의 행진, 다이아몬드 더스트의 첫인상다이아몬드 더스트는 맑고 매우 추운 아침, 공기 중에 떠 있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얼음결정들이 햇빛을 산란하며 반짝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눈이 내리지 않는데도 공기가 은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고, 움직일 때마다 시야 곳곳에서 별빛 같은 섬광이 터진다. 극지나 고산에서만 가능한 일로 여겨지지만, 복사냉각이 강하고 대기가 정온한 도시의 겨울 아침에도 의외로 출현한다. 건조하고 맑은 밤을 지나 지표가 급격히 식으면 접지층의 공기가 포화에 도달하고, 대기 중 수증기가 직접 승화해 미세한 얼음결정으로 변한다. 이 결정들은 매우 느리게 낙하하거나 거의 부유한 채로 빛을 반사·굴절·산란해 눈부신 점광을 만든다. 때로는 가로등이나 태양 같은 밝은 광원 주변에 기..
비르가, 하늘에서 증발하는 비 (Virga) · 건조층과 냉기류의 시그널 하늘에서 사라지는 강수, 비르가의 첫인상비르가는 구름에서 떨어진 빗방울이나 눈송이가 지표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증발 또는 승화해 사라지며 남기는 실 모양의 강수줄기를 말한다. 구름 아랫부분에서 커튼처럼 늘어진 잿빛 줄기, 권적운 하부에 비치는 은근한 하강 띠, 적운의 빗발이 지상에 흔적 없이 스며드는 장면이 전형적이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하늘이 비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구름과 지표 사이에 건조층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건조층이 강수입자를 만나는 순간, 입자 표면에서는 증발(액체→기체)이나 승화(고체→기체)가 일어나고, 그 과정의 잠열 흡수로 주변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진다. 차가워진 공기는 밀도가 커져 하강 가속을 받으며, 구름 아래의 얇은 층에 냉기류와 돌풍, 시정 변화의 신호를 새긴다. ..